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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살아온 동네 이야기
[우리 가족이 살아온 동네 이야기]
김향금 글, 김재홍 그림 | 열린어린이 | 2011년 04월 27일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홍정희 | 독자평점 독자 평점 | 추천(1) | 2011-05-10
기와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정경 뒤로 전봇대가 삐죽이 서 있다. 눈길이 멀리 이르는 곳에는 높다란 빌딩들이 아스라하다. 어릴 적 살던 동네의 모습이다. 결코 말끔하다고는 할 수 없는 풍경이지만 눈에 익은 사람을 만난 듯 정겹다. 담벼락에 쌓인 연탄재마저도 반갑다.
‘우리 가족이 살아온 동네 이야기’는 3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우리가 살아온 집의 형태, 학교 생활과 놀이, 이웃과의 관계, 시장 모습 등의 사회 변화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지리 이야기로 계획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보다는 김재홍 선생님의 따스한 그림과 함께 추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안개가 자욱한 전남 장흥군. 바로 외할머니의 고향이다. 너른 논과 산을 뒤로 하고 옹기종기 자리한 마을의 모습을 보니 나의 외갓집이 떠오른다. 많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초가집도 있었고 집 뒷산 오솔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던 외사촌들.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검정 고무신을 신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동네 아이들이 모두 친구였던 때였다. 서울아이였던 우리 남매를 데리고 돈둑에서 나물 캐고 저수지에 수영하러 가던 외사촌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왜 무작정 서울가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했을까? 다양한 직업이 있으니 그만큼 기회가 많을거라 여겼기 때문일까? 우리 아버지가 결혼하시고 숟가락 하나 챙겨들고 서울로 올라오셨듯 외할머니도 어린 엄마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오신다. 외할머니에겐 타지 생활의 시작이고 엄마에겐 새로운 고향이 주어진 것이다. 골목골목 이마를 맞댄 지붕 밑으로 이런저런 사연으로 오순도순 모여사는 동네. 70명이 넘는 콩나물 교실에서 그나마도 오전반, 오후반 2부제 수업을 했다. 나도 그랬는데 말이다. 학년 표시판이 2개나 달린 교실 모습이 빛바랜 추억을 꺼내는 느낌이다. 그때도 화장실은 집 안에 있지 않았다. 밤이면 엄마가 깨끗이 닦아 넣어주는 요강에 볼 일을 보고 낮이라도 집안 제일 구석에 있는 변소는 왜그리 멀고 무서운지 동생을 살살 꾀어 보초를 세우곤 했다.
둘만 낳아 잘기르자는 표어로 산아제한 정책을 펴던 시절, 골목엔 아이들이 넘쳐났다. 흙바닥에서 땅 따먹기, 고무줄놀이, 사방치기에 해가 저무는 줄 몰랐다. 간혹 다툼이 있긴 해도 놀이를 하다보면 어느새 한 편이 되어 있곤 했다.
요즘은 복개한 하천을 자연 하천으로 만든다고 윗판을 다 뜯어내지만 그 때는 하천을 덮어 도로로 이용하곤 했다. 청계천 복개 공사로 정든 이웃과 헤어져 서너 번의 이사를 하던 할머니는 모두가 꿈꾸는 빨간 벽돌의 이층집을 지었다. 친정아버지도 학교 들어가기 전의 나와 엄마 등에 젖먹이 동생을 업고 빨간 벽돌로 집을 지으셨는데. 책장을 넘기며 나의 시간도 함께 뒤로 돌아가고 있다.
말없이 이사하고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도 누가 누군지 모르는 아파트에 사는 오늘의 아이. 살긴 참 좋아졌다. 멀지 않은 곳에 온갖 물건을 파는 상점이 빼곡하고 음식점에 병원에 학원에 없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살만한 곳은 못되는 것 같다. 사람은 많지만 살가운 사람은 없다.
오랜만에 청계천을 찾은 엄마는 온데간데 없어진 옛집이 서운키만 하다. 무지 멀던 동묘도 고작 몇 분거리다. 엄마의 마음을 나도 백번 공감한다. 어릴 적 살던 동네로 다시 부모님이 이사를 오시고 가 본 동네의 골목길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날 갈 정도로 좁았다. 그때는 친구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지났는데 말이다. 학교 운동장을 또 왜그리 작은지.....
책 장을 넘기다 보니 지리 이야기니 정보 그림책이니 하는 책의 소개는 다 잊었다. 그저 잊은 듯했던 내 소중한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 보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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