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아동문고 30 우리 시대의 인물이야기 10

우리 민족 최고의 이야기꾼 홍명희

김남일 지음, 박준우 그림 | 사계절
우리 민족 최고의 이야기꾼 홍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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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정보
발행일 : 2011년 11월 07일 | 페이지 : 232쪽 | 크기 : 15.4 x 22.5cm
ISBN_13 : 978-89-5828-571-7 | KDC :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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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평점 | 판매지수 500 | 독자 서평(0)
교과관련
5학년 국어 1학기 06월 7. 상상의 날개
6학년 국어 1학기 03월 1. 상상의 세계
우리나라 민족 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삶과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1888년 양반집 자제로 태어난 홍명희는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며 일본 유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해 서양 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그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사에 깊은 분노를 느꼈고, 독립 운동가로서로 신간회 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제대로 살린, 우리나라만의 문화가 담긴 작품을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임꺽정』이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에 조선의 역사,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대표 민족 소설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독립 운동가이자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홍명희의 삶을 재조명합니다. 흔히 다뤄지지 않는 인물, 현대사에서 빛을 발하는 인물들의 삶을 담아낸 ‘우리 시대의 인물이야기’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입니다.
김남일
1957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네덜란드어를 공부하고, 1983년『우리 세대의 문학』에 단편「배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장편소설『청년일기』『국경』(전7권)을 비롯하여『일과 밥과 자유』『천하무적』『세상의 어떤 아침』을 썼으며, 장편동화『떠돌이꽃의 여행』을 펴냈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 계간『실천문학』의 주간으로 일했으며, 제1회 전태일문학상(보고문학 부문)을 받았습니다. 장편동화『골목이여, 안녕』, 인물 이야기『통일 할아버지 문익환』『전태일』을 썼고, 고전『전우치전』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다시 썼습니다.
박준우
1981년 울산에서 태어나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화가나 만화가가 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꿈을 좇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 게임』『자유의 노래』『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33명의 칠레 광부들』 등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인물이야기’ 완간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우리 시대의 인물이야기’ 는 1994년 처음 펴내기 시작해 고침판을 내는 등 15년이 넘는 세월 속에 한권 한권 천천히 쌓아온 책들이다. 이 시리즈는 당시 위인전 하면 에디슨, 이순신 등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다루던 세태에서 벗어나 그동안 거의 어린이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현대사의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인물이야기’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냈다. 기존의 인물이야기 또는 위인전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출발한 이 시리즈는 무엇보다 인물 선정에 있어서 근대성을 관철하고자 했다. 그래서 봉건사회의 영웅들 대신 해방 이후 각 분야(정치·학문·예술·법조계·노동계·종교계 등)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민족적 주체성 확립에 헌신한 인물들을 선정하여 새로운 위인상을 정립해 왔다.
1권 『민주주의의 등불 장준하』(김민수 지음)를 시작으로 『나비 박사 석주명』(박상률 지음), 『민족 음악가 김순남』(김별아 지음), 『마지막 선비 김창숙』(정종목 지음), 『민족 시인 신동엽』(김응교 지음), 『인권 변호사 조영래』(박상률 지음),『청년 노동자 전태일』(위기철 지음),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김남일 지음),『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안재성 지음)에 이어 마지막 권으로『우리 민족 최고의 이야기꾼 홍명희』가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우리 민족 최고의 이야기꾼 홍명희』는 평소 『임꺽정』의 애독자이자 홍명희를 존경하는 소설가 김남일이 관련 자료를 세세히 살펴보며 심혈을 기울여 쓴 인물이야기로, 아이들에게 다소 낯선 인물인 홍명희와 소설『임꺽정』을 당시 시대상황과 연결해 그의 구체적 삶 속으로 친절하게 이끈다.

홍명희문학제와 소설 『임꺽정』


올해로 16회를 맞는 ‘홍명희문학제’(2011년 11월 5일)는 1996년 처음 시작해 해마다 꾸준히 이어온 행사다. 하지만 홍명희문학제는 늘 고난 속에 치러진다. 1998년 홍명희 30주기, 『임꺽정』연재 70주기를 기념해 홍명희의 고향 괴산에 세워진 ‘홍명희 문학비’는 보훈단체의 압력으로 문학비 문안을 수정해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현재는 주변에 펜션이 들어서 문학비 주변이 온통 주차장으로 변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또 홍명희 생가는 ‘일완 홍범식 고택’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국 민족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홍명희의 소설『임꺽정』은 80년대 대표 금서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의 삶을 산 벽초 홍명희가 단지 ‘월북’했다는 이유 때문인데, 우리가 아직도 ‘분단체제’에 놓여 있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다.
소설가 김남일은 모든 것을 차치하고 일단 소설 『임꺽정』이 이야기 자체로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초점을 맞춘다.『임꺽정』이 어떤 작품이며 무슨 의미를 갖는지부터 설명한다. 그리고 그 저자 홍명희가 어떤 의도로『임꺽정』을 집필했으며, 당시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를 차근차근 밝혀 나간다.

이야기를 사랑한 이야기꾼 홍명희

벽초 홍명희는 1888년 충청도 괴산 땅 인산리에서 태어났고, 그의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양반 가문이었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읜 홍명희는 어린 나이에 ‘파리는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데, 우리 어머니는 어찌 아니 돌아오시나’(蒼蠅年年生 吾母何不歸)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났다. 열한 살 때, 우연히 『삼국지』를 접하고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그 어려운 한문판을 혼자 힘으로 20여권 한 질을 다 읽어 내기도 했다. 열세 살에 결혼한 홍명희는 서울로 올라와 중교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공부하는 중 이광수·최남선과 친분을 쌓았으며, 서양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독서에 탐닉했다. 홍명희는 일본 유학생들 단체가 연합한 ‘대한흥학회’의 기관지『대한흥학보』편집 일을 맡아 하면서 애국 계몽사상과 과학문명의 중요성을 알리는 글들을 수시로 썼다.

“(……) 단군의 옛집에 불길이 치솟는데 불을 꺼서 위급을 구할 사상은 조금도 없고, 아이들 놀음과 같은 일로 서로 간에 힐난하여 불속에 앉아 고려장을 기다리니, 일시의 편안에 젖은 당상의 제비는 불꽃이 장차 이르나 알지 못하거니와, 알고도 달게 받고자 하는 이런 무리는 냉정한 눈으로 곁에서 구경하는 자가 제비나 참새에도 비교하지 못할 민족이라 침 뱉고 욕하리라. (……)”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데도 독립과 단결을 바라는 마음이 부족한 동포들을 매섭게 꾸짖으며 민족의 대단결을 이루어 어두운 현실을 헤쳐 나가자고 호소하는 내용의「일괴열혈(一塊熱血)」만 봐도 그의 빼어난 문장력을 엿볼 수 있다.
1928년 홍명희는 신문에『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그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분열된 민족을 하나로 모으는 신간회운동으로 한창 분주하던 시기였다.『임꺽정』을 연재하는 홍명희의 속뜻을 사람들은 금세 알아차렸다.

“왜놈들의 검열에 걸려서 ○○으로 사라진 글자는 필시 계급적 ‘분노’에, 사회에 대하여 ‘반기’ 정도가 되겠지, 아마?”
“어이쿠, 여기 족집게 무당이 있었네그려. 자네 그 정도면 복자를 전문적으로 되살려 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네그려.”
홍명희가 기분이 좋아 껄껄 웃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나? 그런 임꺽정이를 4백 년 만에 다시 끌어내는 자네 속셈도 훤히 읽을 수 있다네.”
“맞아. 말하자면 그 시절 백정은 왜놈의 발굽 아래 신음하는 우리 조선 백성들이고, 그가 이끈 도적 떼는 말하자면…….”
“쉿!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네, 이 사람아!”
“아, 그 사람 겁도 참 많네그려. 그렇게 소심해서야 어디 임꺽정이를 제대로 쓸 수나 있겠나?”
홍명희는 벗들과 함께 한바탕 크게 웃음을 나누었습니다. 『임꺽정』을 연재하는 제 속뜻이 어디에 있는지 다들 쉽게 이해하는 것이 무척 흐뭇했습니다. (151쪽)

소설 『임꺽정』은 그런 속내와 전혀 상관없이 일단 재미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간회 민중대회 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도 독자들의 성화에 못이긴 신문사의 요청에 의해 원고를 써야 할 지경이었다.
홍명희는 일제의 탄압이 강해지자 변절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며 크게 좌절했다. 그 와중에『임꺽정』은 몇 차례 연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940년까지 13년간이나 연재가 계속되었다. 홍명희에게 『임꺽정』은 옛날 옛적의 떼도둑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를 잃은 불쌍한 조선 민중의 이야기였다. 홍명희는 『임꺽정』을 제대로 살려 내기 위해 애써 발품을 팔아 다양한 역사책을 찾아 읽고 그 안에 우리 말, 우리 역사, 풍속, 지리, 문화 등 조선에 관한 모든 것을 집어넣었다.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182쪽)

홍명희가 『임꺽정』을 “된장국처럼 가장 조선적인 냄새가 풍기는 소설”로 만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가 말살하려는 조선 문화를 어떻게든 되살리고 싶어서였다.
소설가 김남일은 이런 것 말고도 『임꺽정』의 중요한 점을 ‘재미’로 꼽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는 것은 홍명희가 글을 쓸 때 유머와 해학, 그리고 풍자와 같은 기법을 잘 사용했기 때문이다.

“홍명희는 자기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일제 치하의 고단한 생활에서도 잠시나마 즐겁게 웃음 짓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나아가 언젠가 일본을 물리치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잃지 않기를 바랐겠지요.” (190쪽)

민족의 하나 됨을 염원한 독립운동가 홍명희

일본 유학 시절 ‘조선인 수재’로 신문에 기사가 날 정도로 학업 성적이 뛰어났던 홍명희는늘 민족 차별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조선인 유학생들끼리도 서로 단결하지 못할 때였다. 홍명희가 일본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조국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주권이 절반은 일본으로 넘어가 버렸고, 1907년에는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당했다. 1910년 2월, 결국 홍명희는 공부를 겨우 한 학기만 남겨 놓은 채 귀국한다. 그해 8월 29일 경술국치라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의 날을 맞이하고, 한국은 일본의 완전한 식민지가 된다. 바로 그날 금산군수로 있던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은 ‘나라가 파멸하고 임금이 없어지니 죽지 않고 무엇하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을 한다. 이는 홍명희에게 또 하나의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부친이 남긴 “어떻게든 조선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버린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는 유서는 평생 홍명희가 되새기며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된다.
홍명희는 아버지의 3년상을 치르고 해외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중국으로 떠난다. 1913년에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 단체 ‘동제사’에 가담해 활동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구하기 위해 남양으로 떠나기도 한다. 홍명희는 해외독립운동 시절 단재 신채호와 친분을 쌓고 역사의식을 더욱더 공고히 한다. 1919년 3월 19일에는 고향 괴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투옥되기도 했다.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는 우수한 문학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우리 신문 역사상 처음으로 신춘문예를 도입했고, 중국에 있는 신채호의 글을 신문에 연재해 나중에『조선사연구초』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할 말은 하는 민족지로서의 성격을 갖춰 나가던 신문사들이 일본의 개량주의 노선에 순응하자, 홍명희는 미련없이 신문사 생활을 접는다. 홍명희는 남강 이승훈의 뜻을 따라 민족교육의 전당이라 할 만한 오산학교 교장으로 취임해 민족교육을 통해 민족운동에 힘썼다.
홍명희는 일제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만들어진 민족운동단체 ‘신간회’ 운동에 앞장섰다. 지역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각종 계몽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신간회가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자 일제의 감시도 날로 심해졌다. 결국 홍명희는 신간회 민중대회 사건으로 몇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36년 단재 신채호가 뤼순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홍명희는 큰 실의에 빠진다. 세상은 바야흐로 변절자들이 날뛰고 있었다. 작가들조차 앞서서 친일의 길에 들어섰다. 홍명희의 옛벗 이광수는 일제가 일으킨 전쟁을 노골적으로 찬양하기도 했다.
홍명희는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문인들의 행태에 진절머리를 쳤다. 한때 독립운동 동지들조차 변절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속에 “도둑처럼” 해방이 찾아왔다. 일본군이 물러난 자리에 미군과 소련군이 들어와 삼천리강산이 삼팔선을 사이에 둔 채 둘로 갈라진 것이다. 해방 이후 나라는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으로 완전히 나뉘었고, 양쪽 모두 홍명희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홍명희의 정치적 입장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신간회 시절부터, 그는 오직 민족이 큰 뜻 아래 하나로 뭉치기만을 바랐다.

“왜놈 밑에서는 독립이 유일한 목표였소. 독립은 이뤘지만 나라가 둘로 갈라진 지금은 통일이 유일한 목표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 하나이외다.” (213쪽)

민족의 분열 속에 1945년 12월 27일 한국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 일본의 강제 점령에서 해방되어 이제 겨우 내 나라를 만드나 싶었는데, 5년 동안 미국과 소련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온 국민이 거세게 반대하고 나서고, 홍명희 역시 신탁통치를 적극 반대했다.
하지만 소련의 지령을 받은 좌익 쪽에서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꿔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좌우 대립은 더욱 심해져 나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1947년 10월, 홍명희는 스스로 나서 ‘민주독립당’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중간파에 속하는 정당들을 한데 모아 좌우의 단결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삼팔선 이북에서는 김일성이 소련의 힘을 업고 사회주의 정권을 다져나갔고, 미국은 미국대로 남한에서 자본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에 뿌리를 둔 정권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를 열기로 합의를 보자, 이때가 “자주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홍명희는 백범 김구 등과 평양으로 향한다.

나는 민족과 강토의 분열을 차마 앉아 보지 못하여 남북회담에 참가코자 평양으로 향한다. 땅의 남북으로써 민족적 이해를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피차간 백지로 만나 이 회담을 진행시키고자 한다. 나는 남에서 고집하던 나의 주장을 북에 가서도 고집할 작정이다. 이번의 남북회담이 성공되고 실패될 것은 예단치 못하지마는 우리 민족의 역사로는 한 단계의 진전을 이룰 것을 확신한다. (223쪽)

“그것이 남한 땅에서 볼 수 있었던 홍명희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로 끝맺는 소설가 김남일의 문장은 커다란 여운을 남긴다.『벽초 홍명희 평전』등 벽초 연구가 강영주 교수의 책들을 살펴보면 북한에서의 홍명희의 행적도 살필 수가 있다. 하지만 저자 김남일은 거기까지는 다루지 않는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독립운동가로서 벽초 홍명희는 민족이 분열됨을 원치 않고 끝까지 하나 됨을 간절히 바랐다는, 역사 기록을 통한 명백한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1948년 남북연석회의의 실패로 결국 우리는 지금껏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대치 상황에 놓여 있다. 독립운동가 홍명희는 ‘월북’했다는 이유로 반세기가 넘도록 역사책 속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가 남긴 우리 민족 최고의 유산, 소설『임꺽정』역시 금서로 묶여 있었다. 소설가 김남일의 『우리 민족 최고의 이야기꾼 홍명희』는 이러한 이유로 오랫동안 역사 속에 가려졌던 홍명희와 『임꺽정』을 객관적으로 복권(復權)시키는 종요로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다른 학생들은 홍명희 군을 본받아 한층 분발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어째서 홍 군만 못하단 말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저 조선인만 못하다는 것은 우리 일본 남자들의 수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학생들은 목구멍 아래로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교사의 얼굴은 벌겋게 변했습니다. 홍명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도대체 선생이라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싶었지요. 이건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자극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민족 차별적인 망언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왜, 조선인 학생이 공부를 잘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걸 어째서 민족하고 연결시키지?’
‘내가 만일 공부를 못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아마 조선인이라서 공부를 못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홍명희는 따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기가 죽을 대로 죽은 동급생들을 생각해서 꾹 참았습니다.
그런 식의 차별적인 발언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52~53쪽)

주변에서는 홍명희에게 조심할 것을 수시로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경찰 놈들이 승냥이처럼 자네를 노리고 있네. 말 한마디 삐끗하면 언제라도 잡아채 갈 것이야. 그러니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나.”
홍명희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신간회에 관한 한, 난 어떠한 난관이라도 필사적으로 헤쳐 나갈 것이네. 어느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하네. 설사 누가 나를 밀어내고 새로이 신간회를 이끌어 간다 해도, 나는 어미가 어린 자식을 버리지 못하듯이 끝까지 쫓아다니며 뒷바라지를 할 것일세.”
신간회에 대한 홍명희의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지회가 부르면 어디라도 달려갔습니다. 가령 1927년 7월 이후에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영남 지역을 누볐습니다. 그리하여 불과 서너달 사이에 영일, 안동, 봉화, 대구, 상주, 영덕, 고성, 진주, 하동, 거창, 함양에 지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신간회의 기세에 놀란 일제는 마침내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본문 137~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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